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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비즈니스와 생태경제]

기술 아카이빙과 예술 기록의 새로운 방식

by 지구인_jiguin 2025. 4. 12.

아카이빙의 재정의 : 기술 시대 예술 기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예술 작품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방식은 항상 당대의 기술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캔버스와 종이, 사진 필름, 영상 테이프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예술의 저장과 전승을 위한 주요 수단이었으며, 이들은 주로 정적인 형식을 통해 창작물을 물리적으로 남기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예술의 표현 양식이 다변화됨에 따라, 예술 기록의 개념 자체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뉴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설치, 가상현실 기반 작품 등은 고정된 이미지나 텍스트만으로는 완전히 포착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의 문서 중심 기록 방식은 점차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예술 기록은 단순히 예술 작품의 흔적을 넘어, 복합적인 체험 요소와 동시대 사회·문화적 맥락, 기술적 환경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이고 다층적인 아카이빙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록은 더 이상 과거를 고정된 형태로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해당 예술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을 함께 이해하고, 관람자가 그 경험을 유연하게 재현하거나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예술 기록은 이제 ‘남긴다’는 행위보다 ‘살아 있게 한다’는 목적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기록된 콘텐츠가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구현될 수 있는 재생 가능성과 가변성을 필수적으로 내포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기록의 대상뿐만 아니라 기록의 의도와 방법,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수용자의 위치까지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예술 아카이빙이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전문가 중심으로 관리되는 ‘소장의 논리’에 의존해왔다면, 디지털 기반의 현대 아카이빙은 접근성과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술 기록은 단지 한 시점의 상태를 정지된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든지 접근하여 경험하고 나아가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거나 맥락을 덧붙일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예술 기록은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문화적 기억이자 기술 사회의 궤적을 담아내는동적인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동시대 예술과 기술 기록: 실천적 아카이빙의 사례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현대 예술의 기록 방식은 단순한 보존의 차원을 넘어, 창작 행위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아트, 제너러티브 아트, 인터랙티브 설치 미술과 같이 관람자의 개입이나 알고리즘의 실행 조건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매번 다르게 구현되는 예술 장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예술 작품은 고정된 형상이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문서화하거나 정지된 이미지로만 남기는 것은 해당 작품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술가, 큐레이터, 디지털 보존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술적 수단을 활용해 보다 정밀하면서도 다차원적인 아카이빙 방법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예술과 미디어 센터)에서 추진한 ‘Media Art Repository’ 프로젝트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기관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지속 가능한 보존을 목표로, 작품의 코드나 화면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구현되던 기술 환경 전체를 아카이빙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작품이 작동하던 운영체제(OS), 디스플레이 장비의 사양,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구성, 관람자의 동선까지 함께 기록하여, 미래에도 당시의 조건 아래에서 예술 경험을 가능한 한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입체적인 기록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예술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까지 포함하여 ‘당시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한편,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디지털 아트 플랫폼 라이좀(Rhizome)은 웹 기반 예술 아카이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이들은 ‘Webrecorder’라는 오픈 소스 도구를 개발하여, 웹사이트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동작 가능한 상태로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방식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스크린샷이나 HTML 백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웹 페이지의 구조적 작동, 사용자 클릭 흐름, 데이터 요청과 반응까지 동적으로 저장해 미래의 사용자가 당시의 디지털 환경을 재현할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인터넷 기반 예술이나 온라인 퍼포먼스와 같이 단시간에 변화하고 소멸하는 콘텐츠를 보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 예술의 기록은 정적인 보존에 머무르지 않고, 작동 메커니즘, 시간적 전개, 관람자의 반응과 상호작용까지 모두 포괄하는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구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과거의 예술 기록과 명확히 구분되는 중요한 전환점이며, 나아가 미래의 예술 연구와 교육, 그리고 재창작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천적 기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기술 기반 예술의 아카이빙은 단지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게 기억하고,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적인 문화적 행위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 아카이빙과 예술 기록의 새로운 방식

 

 


 

참여형 아카이빙: 작가와 관람자, 기술자의 협력 구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 작품이 점점 더 복잡하고 상호작용적인 성격을 띠면서, 예술 기록 방식 또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 사운드 설치, 인터랙티브 전시와 같은 장르에서는 작품을 기록을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닌, 여러 전문성과 감각이 결합된 협업적 실천으로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 기술자, 큐레이터뿐 아니라 작품을 체험하는 관람자까지도 기록의 주체로 포함되며, 기록의 범위와 방식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디지털 예술은 물리적인 오브제로 환원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카이빙 과정에서 작품이 실행되는 기술적 환경,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세부 조건, 사용된 센서나 장비의 반응 방식, 인터페이스 구성과 사용자 경험의 흐름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기술적 맥락을 기록하려면 예술가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어, 초기 창작 단계부터 기술자, 프로그래머, 설치 전문가와의 다학제적 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큐레이터는 작품의 철학적 방향과 전시 동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향후 재현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고 문서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트 보존 단체 DOCAM(Documenting and Conserving Media Arts Heritage)의 사례를 보면, 단순한 디지털 백업이나 기술 사양 저장을 넘어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이 미래에 어떻게 보이고 보존되기를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예술가는 작품의 알고리즘 구조, 실행 순서, 장비 배치, 관람자의 이동 동선까지 포함한 기술적 지침서를 제출하고, 큐레이터와 기술 전문가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재현 가능한 보존 모델’을 공동 구축합니다. 이는 예술 기록이 과거 저장을 넘어 미래를 위한 예측적 설계이자 재창작의 설계도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반영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디지털 아트 기록에서는 관람자들의 체험과 반응도 아카이빙의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관람 자체가 작품의 작동을 완성하므로, 관객의 참여와 반응이 곧 작품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전시장 내에서의 움직임, 선택 행동, 인터페이스 조작 기록, 감상 후 피드백 등은 모두 작품의 맥락을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로, 텍스트와 이미지 외에도 동영상, 센서 데이터, 음성 기록 등이 함께 수집됩니다. 예술의 기록이 점점 더 개방적이고 참여 중심적인 구조로 변하면서, 아카이빙은 고립된 저장소가 아닌 공동의 기억 공간이자 지속적인 예술 경험의 기반으로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술 기록의 미래: 기술 기반 창작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기술 기반 예술의 진화는 기록 방식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도록 요구합니다. 인공지능(AI),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블록체인 등의 첨단 기술이 창작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예술은 더 이상 고정된 결과물로 존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변형되는 과정 중심의 경험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지 눈으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기술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환경에 따라 다른 결과를 생성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적 기록 방식만으로는 그 본질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예술 기록의 패러다임은, 따라서 ‘정지된 기억’에서 ‘살아 있는 재생 가능성’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는 기록이 예술의 일부로 통합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소유권 인증(NFT)의 도입으로 인해, 기록과 유통, 감상과 소장 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습니다. NFT 기반 예술은 작품을 하나의 고유 데이터로 저장함과 동시에, 그 소유 이력과 거래 내역까지 블록 단위로 영구 보존하며, 이는 기록이 권리와 가치, 유통망의 일부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록이라는 행위가 단지 아카이브 머무르지 않고 예술 생태계 내에서 활발히 흐르고 교환되며 가치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경제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함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무엇을, 어떤 기술로, 누구의 시선으로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고민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예술 아카이빙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미래 세대의 창작과 연구, 교육을 위한 디지털 문화 기반 시설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데이터 저장 수준을 넘어서, 해석 가능한 구조, 참여 가능한 인터페이스, 재구성 가능한 콘텐츠 체계가 요구됩니다. 예술 기록은 단일한 결과물이 아니라 시대적 감각과 기술 철학, 문화적 상상력이 얽힌 다층적 문화유산으로 재정의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가, 기술자, 큐레이터, 관람자 모두가 참여하는 탈중심화된 협력 플랫폼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아카이빙 구조는 특정 기관이나 소수 전문가의 통제 아래에 머물기보다 누구나 접근하고 열람하며 재해석할 수 있는 열린 기록 생태계로 진화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으로는 개방형 데이터 아카이브, 사용자 참여형 인터페이스, 인터랙티브한 기록 경험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예술을 살아 있는 지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이제 예술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기술과 인간, 기억과 상상력이 만나는 접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예술 생태계가 생산과 소비 관계를 넘어 기록과 공유, 재해석과 공동 창작의 새로운 문화적 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술 기록의 미래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위한 필수적인 기반 시설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입니다. 이는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와 공유, 그리고 공동의 창작 활동으로 확장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예술 기록 역시 그러한 변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함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