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책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 실제 행정 사례와 성과
공공정책 속 예술의 역할, 환경 예술과 도시재생의 만남
도시재생은 더 이상 단순한 물리적 재건축이나 기반 시설 정비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도시재생은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공동체의 자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증진하는 다면적인 정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단지 벽화를 그리거나 미적 장식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예술은 도시와 지역, 환경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감각적 매개자이자 사회적 해석자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폐기물 예술은 도시재생 맥락에서 주목받는 창작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폐기물 예술은 재료 자체가 도시의 과거이자 현재를 반영하며, 미래적 가치와 순환의 의미를 상징하는 장치로서, 공공공간에서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오브제로 작용합니다.
행정과 정책이 예술을 도입하는 순간, 예술은 고립된 창작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적 실천과 제도적 상상력의 일부로 전환됩니다. 특히 행정이 폐기물 예술을 수용한다는 것은 환경 문제와 문화적 창작을 단절된 영역이 아닌 통합된 정책 목표로 바라보겠다는 선언이자, 감각의 정책화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폐소재를 활용한 조형물, 주민이 참여한 커뮤니티 아트웍, 버려진 자원을 재해석한 공공조경 등은 그 자체로 도시의 쓰임새와 정체성을 새롭게 설계하는 행동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물리적 예술을 넘어, 정책의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행정의 언어로 예술을 활용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국내외 다양한 도시에서는 폐기물을 활용한 예술 프로젝트가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포함되어, 문화적 콘텐츠이자 환경적 실천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얼굴을 변화시키는 것은 건축이나 도로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담긴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이를 해석하고 제안하는 예술의 힘에 있다는 점에서, 정책과 예술의 접점은 앞으로 더욱 확장되어야 할 실천적 영역입니다.
서울 성수동 도시재생사업, 예술과 문화로 재탄생한 산업지역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대로, 기계 부품 공장, 제화업체, 인쇄소 등 각종 제조업 기반 산업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 구조의 변화와 주변 지역의 대규모 개발로 인해, 이 지역은 점차 노후화된 건물과 쇠퇴하는 거리, 낮은 유동 인구 등 도시의 소외된 구역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서울시는 ‘성수동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이 지역에 예술과 문화 중심의 재생 모델을 도입하고, 기존의 산업 공간을 창의적 창작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이 단지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주민의 삶과 창작의 가치를 회복하고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문화 기반 프로젝트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강조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대표적인 공간 전환 사례로는 ‘크리에이티브 성수’가 있습니다. 이곳은 서울시와 성동구가 협력하여 성수동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복합 문화 창작 거점으로, 단순한 전시장이나 공방의 개념을 넘어 도시 산업과 예술, 청년 창작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방치되었던 창고형 건물들이 예술가와 디자이너, 기술 창업자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재정비되었고, 입주한 창작자들은 업사이클링 아트, 산업 잔재 재활용,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오브제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입주 작가들이 성수의 기존 산업 잔여물—가죽, 철제 프레임, 산업용 목재 등—을 창작 소재로 활용하며, 과거의 기능 중심 생산물이 어떻게 미적 가치를 지닌 공공 예술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성수’는 창작 활동뿐 아니라 커뮤니티 협업과 지속 가능한 도시문화 전략의 실험장이 되어가며, 성수동이 단지 과거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컨퍼런스 필드’나 ‘아트성수’와 같은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이 지역 주민 및 외부 방문객과의 소통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컨퍼런스 필드’는 성수동 도시의 산업적 뿌리와 예술의 미래를 주제로 다양한 세대의 창작자들이 모여 강연, 토론, 퍼포먼스를 펼치는 공개 행사로, 지역 주민들에게도 무료로 개방되어 창작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트성수’는 성수 일대 창작 공간과 입주 작가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예술 동선을 구성하고, 관람객들이 공간을 거닐며 다양한 업사이클링 작품과 설치 미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자연스럽게 폐기 자원 기반의 창작물들이 소개되고, 방문객과 창작자 간의 대화, 창작 시연, 소규모 워크숍 등이 진행되어 지역과 예술, 행정이 연결되는 살아 있는 현장 교육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단지 전시 행사에 그치지 않고, 성수라는 지역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 실험장으로 전환시키며, 예술이 도시 속에서 어떻게 행정과 사회 구조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중요한 실천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쓰레기에서 도시 아이덴티티로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관광 명소이자,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의 과거는 지금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감천동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 형성된 비공식 주거지로, 오랫동안 불법 건축물, 노후한 환경, 고령화된 주민 등의 문제로 인해 도시의 그림자로 여겨지던 지역이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마을은 관광객은 커녕 외부인의 발길조차 드물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으며, 물리적 기반과 사회적 활력이 모두 쇠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부산시, 사하구청이 협력하여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는 감천문화마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기 사업은 마을의 전경과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여 시각 예술 중심의 접근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산복도로를 따라 형성된 지형과 계단식 주거는 감천 고유의 입체적인 풍경을 제공했으며, 이를 예술적으로 확장 하기 위해 설치 미술, 업사이클링 조형물, 벽화 프로젝트 등이 연이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단순히 미관을 개선을 위한 벽화나 구조물 설치를 넘어, 지역에서 수집된 생활 폐기물과 버려진 산업 재료들을 예술 작품의 재료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바퀴, 폐목재, 녹슨 철제 부품, 낡은 생활도구 등은 지역 예술가들에 의해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각 오브제로 재탄생하였으며, 이는 감천의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되살리는 방식의 도시재생 전략으로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젝트는 행정이 예술가와 지역 주민을 단순한 수요자가 아닌, 기획의 주체이자 실행의 협력자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초기에는 외부 예술가들의 주도적 개입이 중심이었으나, 점차 마을 주민들이 가이드, 창작 보조, 운영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체 기반의 문화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이는 감천문화마을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현재 감천문화마을은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과 예술가, 행정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복합 커뮤니티 공간이 자리잡으며, 도시재생과 예술이 융합된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사례는 도시 속의 쓰레기와 폐자재가 단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공동체의 자산으로 전환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천의 변화는 폐기물 예술이 행정과 시민, 예술가가 협력하여 도시의 기억을 복원하고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증명해낸 장기 프로젝트이며, 한국형 공공예술 도시재생의 선도적 모델로 남아 있습니다.
예술 행정의 제도화와 도시 감각의 재구성
공공정책 안에서 예술이 지속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기 이벤트나 외부 장식물이 아니라 제도적 언어로 통합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예술은 행정 시스템의 일반적인 논리인 효율성과 수치화 가능성, 결과 중심 평가 기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작은 계획보다 우선하며, 감각은 논리보다 빠르고, 의미는 종종 설명 불가능한 층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이 도시재생이나 공공정책의 영역 안에서 일정한 지속성을 가지려면, 제도 내부에 감각적 요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 언어 자체를 확장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통합을 위한 첫걸음은 예술가의 역할을 디자인 제공자나 장식가가 아닌, 공공성과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참여자로 재정의하는 데 있습니다. 행정에서 기획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대부분은 일정한 예산과 시기를 전제로 한 공모형 구조를 취하는데, 이 구조 안에서는 예술이 유연하게 작동하기 어렵고, 창작의 맥락 또한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행정 안에서 예술가가 초기 계획 단계부터 예산 배분 구조, 공간 설계, 커뮤니티 운영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경로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문화 행정 전담 부서나 도시 문화 전문 기획자, 중간 조직 등의 다층적 지원체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예술가와 행정인 사이의 언어를 번역하고, 시스템과 감각 사이의 접점을 실현하는 도시 감각 조정자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예술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의 상황입니다. 작품이나 설치가 남는 것으로 도시재생이 완료되었다고 간주되면, 예술은 결국 사라지고 제도만 남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산 설계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일회성 성과 중심 예산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에 기반한 과정 중심의 운영 예산, 예술가의 리서치와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실험성 지원 구조, 지역 내 상주 예술가나 커뮤니티 큐레이터에게 장기적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 생활 지원성 기획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만 예술은 행정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도시재생 안의 예술이 물리적 풍경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정책의 상상력 자체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폐기물 예술은 그 물질성과 감각성, 비판성과 창의성이 모두 살아 있는 예술 장르이기에, 도시계획 안에 느낌과 서사를 삽입할 수 있는 유력한 실천 방식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예술이 행정의 보완재가 아닌, 미래 정책을 설계하는 하나의 감각 구조로 인정받는 제도적 전환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예술을 통해 도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작동 방식을 예술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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