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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칼럼 & 에세이]

기억의 조각을 모으다, 폐기물 속 개인사와 서사의 미학

by 지구인_jiguin 2025. 4. 19.

재료에 얽힌 사적 이야기, 사라진 존재의 흔적을 복원하는 창작

 

폐기물에서 기억의 흔적을 되짚다

 

현대 예술 담론에서 폐기물은 단순히 환경적 실천이나 물질적 측면에서만 조명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적인 기억의 파편이 잠재된 서사의 단초로 기능하며, 예술 창작의 출발점이 됩니다. 폐기된 사물은 누군가의 일상에 속했던 존재로서, 사용자 손의 흔적과 마모, 상처 등을 통해 시간과 경험의 축적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물성의 흔적은 예술가로 하여금 특정 인물이나 순간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며, 잊힌 존재의 삶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낡은 수첩 귀퉁이에 적힌 문장 하나는 누군가에게 결정적 전환점이었을 수 있으며, 바랜 천 조각은 오랜 시간 애착을 받았던 사물의 잔재일 수 있습니다. 사물은 단지 기능을 상실했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시간이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정서적 울림을 자아냅니다.

 

즉, 사물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는 작업은 곧 창작자의 정서적 탐색이며, 동시에 기억을 시각화하려는 예술적 시도입니다. 이때 예술가는 탐험가와도 같은 존재로서, 버려진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단서를 추적하고, 그것을 다시금 현재의 미적 언어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버려진 물건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것을 넘어, 과거와 현재, 존재와 부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창조적 복원 행위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더불어 이는 소비와 폐기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잊힌 것들에 대한 회복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폐기물은 그 자체로 시간의 잔해이며,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잊힌 기억의 실루엣으로 다시 살아나는 서사의 매개가 됩니다. 예술은 이처럼 사물에 잠든 과거를 발굴하고, 그것을 현재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감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장치로 기능합니다.

 

 

사물의 물성과 서사의 창조적 변환

예술 창작에서 사물은 그 외형을 넘어선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폐기된 오브제는 그 안에 내포된 물리적 특성과 역사성을 통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오래된 나무 의자의 긁힌 자국과 마모된 표면은 단순한 사용 흔적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암시하는 단서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사물은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감정, 신체 접촉, 일상 행위를 드러내는 서사의 재료로 변모합니다. 예술가는 이와 같은 흔적을 단순한 손상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창작의 기초로 인식하여 그 의미를 다시 짜 맞추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와 같은 재료는 작가의 손을 통해 해체되고 재배열되며,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가 형성됩니다. 여기에는 물성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섬세한 직관과 그것을 시각 언어로 전환하는 조형적 판단력이 요구됩니다. 창작자는 사물의 표면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포착하여, 그것을 예술적 조형물이나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관객에게 단순한 사물이 아닌, 시간과 정서의 파편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폐기된 오브제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읽어내고 그 안에 잠재된 기억의 단면을 서사로 변환하는 행위는 창작자에게 해석자이자 증언자의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폐기물은 더 이상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삶의 흔적과 감정이 스며든 실존의 잔여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있어 무언의 기억의 조각이며 관객에게는 감추어진 서사를 환기시키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창작 맥락 속에서 폐기물은 단순한 잔해가 아니라 의미를 기다리는 잠재적 오브제로 재탄생하며, 예술을 통해 과거의 보이지 않던 흔적을 현재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예술은 사물, 정서, 기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감성적 통로이자, 인간 경험의 총체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법론임을 시사합니다.

 

기억의 조각을 모으다, 폐기물 속 개인사와 서사의 미학

 

망각된 존재에 대한 예술적 헌사

 

기억은 비단 인간의 두뇌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오히려 사물이라는 외부의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회상되고 구성됩니다. 특히 인간은 기억을 저장하는 생물학적 기관 이상의 존재로, 정서적 감각과 물질적 접촉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고 확장하려는 경향을 지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폐기물 예술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일종의 예술적 헌사로 기능합니다. 예술가들은 익명의 삶 속에서 방치되거나 잊힌 사물들을 수집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시간성과 감정의 층위를 되살리고자 합니다. 갈라진 컵, 찢어진 수첩 조각, 낡은 천 조각, 오래된 필름 사진, 편지지의 일부와 같이 단순히 손상되거나 버려진 잔재는 특정한 인물의 손길과 정서를 담고 있는 실질적 증거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사물들을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행위는 단순한 시각적 조형을 넘어서, 존재의 실체를 추적하는 기억의 고고학으로 확장됩니다. 예술가는 물질에 남은 흔적들을 바탕으로 사라진 개인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그 존재가 한때 이 세계에 있었다는 명백한 자취를 남기고자 합니다. 이 과정은 종종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지며, 망각의 벽을 넘어서려는 지속적인 감정 노동을 수반합니다. 더불어, 이는 예술을 통해 망각에 저항하고, 존재의 흔적을 다시 사회적 기억의 장으로 소환하는 집단적 회상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수행하는 이러한 창작 행위는 단지 사물을 다루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무명의 이들에게 헌정하는 정념의 형식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윤리적 응시로도 확장됩니다.

 

이러한 작업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기억을 소비하고 폐기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장으로도 기능합니다. 기억을 보존하려는 의지는 단순한 향수나 개인적 추억을 넘어서, 사회적 망각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자, 존엄한 삶의 흔적을 지키기 위한 예술적 윤리입니다. 따라서 폐기물 예술은 감각적 불쾌를 동반하는 오브제를 넘어, 사라진 삶을 기리는 조용한 의례로 기능하며, 이 시대가 놓치기 쉬운 인간 존재의 존귀함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억의 개인서사에서 공동서사로의 확장

창작자가 폐기물을 통해 기억의 조각을 복원하는 과정은 결코 개인적 서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사적 체험이나 정서에서 출발한 예술 작품은 완성되는 순간,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의미의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예술이 단일한 진술이 아닌, 열린 이야기 구조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투영하고 감정의 렌즈를 통해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작가의 내러티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폐기물 기반 예술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익명의 사물과 알 수 없는 사연이 얽힌 폐기물은 해석의 여지를 폭넓게 제공하며, 관객 각자가 지닌 기억과 정서적 경험을 자극합니다. 낡은 오브제, 훼손된 조각, 빛바랜 재료 등은 각자의 상실과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작품 속 감정 구조에 새로운 층을 덧붙입니다. 이러한 감상 행위는 예술과 현실, 나와 타인, 현재와 과거를 잇는 통로로 작용하며, 창작자와 관객 사이에 정서적 공유와 공감을 유도합니다. 예술은 단순한 미적 경험을 넘어, 공동체적 정서를 활성화하는 매개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폐기물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기억을 매개로 공동의 감응을 형성하는 촉매로 작용합니다. 작품은 관객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과 감정을 환기시키며, 정서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장이 됩니다. 이때 폐기물은 더 이상 쓸모없는 잔재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매체로 변모합니다. 예술은 이처럼 사적인 서사를 넘어서 공통의 기억 공간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며, 잊힌 존재와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공동체의 시간 속으로 소환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는 단지 미술관이나 전시장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서 타인의 기억과 감정을 교차시키는 공동 기억 실천으로 기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