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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교육과 사회적 실천]

지역성과 재료성 각 도시가 가진 고유 폐기물로 창작하기

by 지구인_jiguin 2025. 4. 18.

 

부산의 폐어망, 인천의 산업 폐재, 제주의 해양 플라스틱 등

 

업사이클링 아트는 단순히 재활용이라는 기술적 행위를 넘어, 사회적 문제와 지역적 특수성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지역 고유의 폐기물을 중심으로 한 창작 사례가 늘어나면서, 재료의 출처가 곧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작업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각 도시가 처한 환경 문제는 서로 다르며, 이는 폐기물의 종류와 형태에도 고유한 특징을 부여합니다. 해양도시에서는 폐어망과 플라스틱 부표가, 공업지대에서는 철재와 산업 잔재가, 관광지에서는 일회용품과 소비성 쓰레기가 주된 폐자원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 방식의 다양성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이 지닌 산업구조, 자연환경, 사회적 기억이 예술 창작의 재료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지역 고유 폐자재의 활용은 환경문제 해결과 미적 창작을 동시에 가능케 하며, 나아가 지역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도구가 됩니다. 이는 일회성 조형물 제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티 디자인, 환경 캠페인, 사회적 기업과의 연계 사업 등 다양한 사회적 확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 아트는 이제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재활용이 아니라, 어디에서 왔고 누구와 만들었는가에 대한 맥락과 서사가 중심이 되는 창작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역성은 작품의 미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재료성은 물질적 감각과 환경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냅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흐름의 실제 사례로, 부산의 폐어망, 인천의 산업 폐기물, 제주의 해양 플라스틱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도시와 예술이 폐기물을 통해 연결되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산, 폐어망을 활용한 재생 나일론

부산은 대표적인 해양 산업 도시로, 어업과 수산가공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 구조의 이면에는 연간 수만 톤에 이르는 폐어망이 해양 쓰레기로 발생한다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특히 폐어망은 플라스틱 계열의 합성섬유로 제작되기 때문에 자연 분해가 거의 불가능하며, 바다에 방치될 경우 해양 생물의 서식지를 위협하거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폐어망의 회수와 처리 비용이 높아 수거율이 낮고, 일단 수거된 후에도 소각이나 매립 외에는 실질적인 자원화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해양 쓰레기 중에서도 처리 난이도가 높은 폐어망은 오랫동안 지역 환경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부산 소재 친환경 스타트업 '넷스파(NETSPA)'의 기술입니다. 이 기업은 해양 폐어망에서 고순도 나일론 원사를 추출하는 재활용 솔루션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물리적 소각이나 단순 압축 폐기 방식을 넘어서는 고부가가치 자원순환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수거된 어망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열화된 소재를 화학적으로 안정화한 후 알-나일론(R-Nylon)으로 재생산하는 공정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를 통해 생산된 재생 나일론은 의류, 스포츠용품, 산업 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만큼 품질이 우수하며, 실제로 국내외 친환경 패션 브랜드들이 이 나일론을 적용한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넷스파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부산 지역의 어촌계, 어업인, 수협 등과 협력하여 어망 회수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재활용 공정을 지역 산업으로 연계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해양 폐기물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기반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순환경제에 기초한 산업 생태계를 구성해가는 실천적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익의 일부는 해양 정화 활동에 재투자되며, 시민 참여형 해양 쓰레기 교육 프로그램과도 연계되어 사회적 확산력까지 확보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폐어망은 이제 단지 버려진 쓰레기가 아니라, 기술과 협업, 윤리적 생산이 결합된 미래형 자원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천, 산업 폐기물의 자원화

 

인천은 수도권 서부의 중심 도시로서, 항만 물류·제조업·공항 운송 산업이 집약된 복합 산업도시입니다. 이러한 산업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 역시 복합적이며, 일반 생활 쓰레기와 달리 공업계열 산업 폐재, 대형 구조물 해체 부산물, 전자 부품 등 고정밀 소재까지 포함됩니다. 인천시는 이와 같은 특수 폐기물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지역사회와 연계한 업사이클링 모델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 공항 및 항만이라는 공간 특성을 반영해, 고부가가치 업사이클링 소재로 변환 가능한 폐기물의 선별과 수거 방식의 체계화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인천국제공항과 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의 협업 프로젝트입니다. 이들은 공항 내에서 매일 수거되는 다량의 플라스틱 병뚜껑, 일회용 컵 뚜껑, 기내 쓰레기 중 비식용 포장재 등을 별도로 분리 수거하고, 이를 원재료로 활용한 업사이클링 교육 키트 및 생활용품 개발에 나섰습니다. 병뚜껑은 색상별로 분류한 후, 분쇄 및 열압축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타일, 트레이, 액세서리 소품 등으로 재가공되며, 일부는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 공급되어 자원순환 교육 및 체험 활동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공항이라는 이동 공간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지역 자원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교육과 고용, 디자인 산업을 연결하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뿐만 아니라 인천시청 산하 자원순환과는 ‘인천업사이클아트센터’를 통해 다양한 폐자재 재창작 워크숍을 진행하며, 지역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산업폐기물이라고 하면 단순히 철제나 콘크리트 덩어리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선, 전자회로판, 건축 유리 파편, 고급 목재 잔재 등 매우 다양한 물성의 재료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조명, 가구, 설치미술 오브제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전시는 물론이고 일부 제품은 실제 판매까지 연계되어 순환경제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천의 사례는 산업 폐기물이 가진 잠재적 가치를 예술과 기술, 시민참여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물류와 운송 중심지라는 도시의 특수성을 쓰레기의 흐름이라는 시선으로 해석해, 공간 자체를 생태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접근은 지역성과 재료성이 연결된 가장 실질적 업사이클링 전략 중 하나로 주목받을 만합니다.

 

지역성과 재료성 각 도시가 가진 고유 폐기물로 창작하기

 

제주, 해양 플라스틱의 예술적 재탄생

 

제주는 연간 약 1만 2천 톤 이상의 해양 폐기물이 발생하는 해양도서 지역으로, 그중에서도 폐어구, 폐스티로폼, 부표, 플라스틱 병과 포장재 등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양 폐기물의 상당수는 관광객 증가와 함께 늘어난 소비 쓰레기와 무단 투기로 인해 해안가에 쌓이며, 섬 전체의 생태 환경과 지역 이미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거된 폐기물은 대부분 단순 소각되거나 매립 처리되어 왔지만, 최근 제주에서는 이러한 폐자원을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으로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이 제주 전역에서 확대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환경 정화나 폐기물 처리 수준을 넘어서 해양 쓰레기를 지역 정체성을 품은 예술 재료로 전환하려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회적 기업 ‘모어댄(MORETHAN)’과 제주특별자치도청의 협업으로 진행된 해양 폐기물 업사이클링 시범사업이 있습니다. 이 사업은 제주시 지역 어촌계에서 수거된 폐그물을 세척, 분해, 가공한 후 패션 잡화나 인테리어 부자재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포함하며, 지역 내 자원 순환 시스템을 문화사업과 연결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익금의 일부는 지역 해양 정화 활동에 재투자되며, 이 사업은 단지 제품 생산에 그치지 않고, 해양 쓰레기 수거부터 디자인, 제작, 전시, 판매에 이르기까지 지역 청년과 예술가의 참여를 촉진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 순환 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더합니다.

 

이와 함께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에서 주관한 ‘제주 자원순환 페스티벌’, '업사이클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창작물들을 큐레이션하여 선보이고 해양환경 관련 워크숍과 강연, 제주도민 참여형 업사이클 프로그램 체험도 함께 운영되었습니다. 이는 업사이클링 아트가 단지 소수 예술가의 창작에 머무르지 않고, 제주 지역의 환경교육, 공공정책, 관광 콘텐츠 개발 등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환경 보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라는 공간성과 깊게 맞닿은 감각적 실천이자 세대 간 자원순환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문화적 제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예술 기반 실천은 도민 스스로의 인식을 전환하고 생활 실천을 유도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정적 가치 또한 분명합니다. 예술가와 지역 커뮤니티, 교육기관,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폐기물에 대한 감각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하는 자원순환형 생활문화 정책과도 맞물려 상승 효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향후에는 대형 지역 협력 사업으로 확장되며, 도 전역의 자원순환 실천 문화 정착과 거버넌스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의 업사이클링 아트는 이제 창작을 위한 재료 활용을 넘어, 공공 정책과 연결된 문화적 인프라로 성장 중인 중요한 생태 전환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