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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교육과 사회적 실천]

냄새와 시간, 후각 기반의 업사이클링 작품 사례

by 지구인_jiguin 2025. 4. 24.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는 감각적 폐기물 예술

 

후각이라는 감각, 예술로 소환되다 

예술은 오랜 시간 시각과 청각 중심의 매체를 통해 정립되어 왔으며, 대부분의 예술 감상 역시 눈과 귀를 통한 인지적 체험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감각과 경험의 총체성이 강조되면서, 후각은 점차 예술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조명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과 감정, 무의식의 층위와 깊이 있게 연결된 감각으로서 후각은 시각적 재현이 닿지 못하는 내면의 감응을 예술로 이끄는 통로가 됩니다. 후각은 인간의 정서와 기억을 다루는 뇌의 핵심 영역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특정한 장면, 장소, 감정을 순식간에 되살리게 하는 능력을 가지며, 이는 창작자뿐 아니라 관람자에게도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는 예술적 매개체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감각은 업사이클링 아트와 결합될 때 더욱 독특한 예술적 지형을 형성합니다. 사용된 시간의 냄새, 풍화된 재료에 스며든 인간의 흔적, 잊힌 공간에 남은 향은 단순한 후각적 반응을 넘어서 감정적 재현과 기억의 소환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폐기물은 기능을 잃고 버려진 물질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시간과 사람의 삶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예술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폐기물의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냄새로 남아 있는 시간의 단편들을 호출하고, 그것을 예술로 재구성하는 시도를 감행합니다. 후각은 이때 단순한 보조 감각이 아닌, 예술의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주도적인 구성 요소가 됩니다.

 

또한 후각 기반의 예술은 시각의 권력에서 벗어나 더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예술 경험을 지향합니다. 누구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언어나 지식 수준에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반응 또한 더욱 다양하고 열려 있습니다. 예술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주체로서의 관람자와 함께 공명하는 감정적 공간이 됩니다. 특히 후각은 문화적 배경, 지역성,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동일한 작품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다층적 감상의 장을 형성합니다.

 

이처럼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는 감각의 확장, 감정의 재구성, 기억의 발굴이라는 세 가지 층위를 동시에 작동시키며, 폐기물에 담긴 서사를 감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정서적 실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폐기물 속 잊힌 시간과 경험을 향이라는 감각으로 끌어올리고, 관객은 그것을 통해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짓는 감정적 여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후각은 더 이상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예술이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쓰는 감각적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폐기물과 냄새의 상호작용,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다 

폐기물은 겉보기에 낡고 쓸모없어진 물건이지만, 그 내부에는 시간의 흔적과 인간의 삶이 겹겹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특히 후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접근할 때, 이들 사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며 감정적으로 재구성됩니다. 낡은 나무 서랍 속의 먼지 내음, 오래된 옷감에 스며든 세제 향, 수십 년 전 책장 안에서 풍기는 종이와 잉크의 퇴색된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감각적 단초가 됩니다. 이처럼 냄새는 폐기물이 지나온 시간과 공간,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촉각 없는 물리적 언어이며, 시각적 정보보다 더 빠르고 깊게 정서를 건드립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각은 업사이클링 예술의 중요한 창작 도구가 됩니다. 예술가는 버려진 물건의 겉모습뿐 아니라, 그 냄새에 집중함으로써 재료가 지닌 시간성과 정서를 다시 호출해냅니다. 폐기물의 후각은 단순한 잔향이 아니라, 사물의 지나온 삶을 감각화하는 통로로 기능하며, 그 냄새가 갖는 생물학적 영향력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결정짓는 강력한 매개가 됩니다. 예술가는 이를 기반으로 기억과 정서, 장소성과 인간 존재를 동시에 어루만지는 예술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시간에 따라 점차 휘발되고 사라지는 후각의 특성은, 존재의 유한성과 기억의 취약함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며 작품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러한 예술적 접근은 벨기에의 후각 예술가 피터 드 쿠페르(Peter de Cupere)의 작업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그는 후각을 조형 언어로 활용하며, 폐기물과 향을 결합해 도시의 서사와 감정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Olfactory Tree〉 프로젝트는 나무 형태의 조형물에 후각 장치를 설치하여, 관람자가 각기 다른 냄새를 맡으며 도시의 풍경과 환경적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향은 대부분 자연물과 폐기물에서 추출되었으며, 특히 퇴비화된 식물, 폐타이어, 버려진 목재 등에서 유래한 냄새는 단지 시각적 오브제의 연장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환경과 사회 구조를 모두 환기시키는 서사 장치로 작동합니다. 

 

냄새를 예술의 중심에 두는 작업은 예술이 다루는 대상이 더 이상 시각적 심미성에 한정되지 않으며, 감각의 균형과 감정의 복원을 추구하는 창작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후각은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로 침투하며, 폐기물은 그 매개가 됩니다. 작가는 버려진 물건의 외형뿐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든 잊힌 향과 체취, 공간의 냄새까지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예술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이때 폐기물은 단순한 조형 재료가 아니라, 감각의 기억장치이며, 향이라는 불안정한 시간성을 통해 사라진 것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감정적 회로로 기능합니다.

 

결국 이러한 창작은 감각의 경계를 허물고, 후각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사적인 감각을 예술의 전면으로 불러냅니다. 후각을 매개로 한 업사이클링 예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도록 유도하며, 폐기물에 남은 냄새를 통해 사회적 감각과 생태적 감수성을 동시에 일깨우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물질의 예술적 삼중주를 완성시킵니다.

 

 

기억과 냄새의 감정적 교차, 관객의 반응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의식적 해석보다 먼저 감정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예술 감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특히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는 관람자에게 심층적 정서 반응을 유도하는 독특한 감상 경험을 제공합니다. 시각이 사물의 외형을 포착하고 분석하도록 유도한다면, 후각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끌어올립니다. 낡은 책장 속에서 맡았던 잉크 냄새, 오래된 장롱에서 풍기던 나무 향기, 주방 한쪽에 놓인 철제 도구에서 배어나던 녹내음 등은 누구에게나 고유한 기억을 자극하며,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단지 무언가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감정적 공저자가 됩니다.

 

이처럼 관객은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후각적 설치물 속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투사하고 감정의 층위를 재조립하게 됩니다. 후각은 개별적인 체험을 보편적인 감정의 장으로 확장시켜 주며, 예술작품은 하나의 향기라는 단서를 통해 수많은 삶의 파편과 교차합니다. 이는 곧 감상 행위를 단순한 미적 판단에서 벗어나, 정서적 사유의 실천으로 전환시킵니다. 예를 들어, 폐섬유에서 나는 미세한 먼지 냄새가 유년 시절 이불 속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산업 폐기물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는 어릴 적 아버지의 작업복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후각적 반응은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는 복합적 층위를 형성하게 됩니다.

 

후각은 시각보다 훨씬 비언어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 탁월합니다. 이는 특히 트라우마, 상실, 회한, 슬픔과 같은 감정이 포함된 기억에서 더욱 강하게 작동하며, 관객은 작품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다시 체화하는 감각적 회귀를 경험하게 됩니다. 작가가 의도한 정서와 관람자의 감정이 충돌하거나 겹쳐질 때 작품은 하나의 정지된 오브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의 인큐베이터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는 특히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가 타 감각 기반 예술과 구별되는 지점이며, 그 감상 경험은 오랜 여운과 자기 성찰의 여지를 남깁니다.

 

결과적으로 후각을 활용한 작품은 관람자 개개인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감정의 층위를 구성하며, 관객과 작품, 공간, 기억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예술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냄새는 흩어지고 사라지는 휘발적 특성을 지녔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정서는 오히려 더 오래도록 감각 속에 남게 됩니다.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는 바로 이 휘발성과 지속성의 긴장을 예술로 번역하는 감각적 실험이며, 예술이 감정을 통해 사회적 연대와 감응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의 확장 가능성 

 

후각을 기반으로 한 업사이클링 아트는 아직 대중적 예술 영역에서는 생소한 장르일 수 있으나, 그 잠재력은 감각적 깊이, 정서적 공감, 환경적 메시지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매우 높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후각은 인간의 기억과 정서, 무의식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감각으로, 시각 중심 예술이 놓치기 쉬운 미묘한 감정과 내면의 흔들림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폐기물은 물리적 변형만이 아니라 냄새와 질감, 온도와 같은 감각적 정보들을 통해 시간성과 관계의 흔적을 품고 있기 때문에, 후각 기반의 예술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각화하는 예술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예술이 환경과 사회, 인간의 기억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천적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술가들은 특정 향기를 통해 재료에 담긴 시간을 해석하거나, 폐기물에 남은 냄새를 창작의 일부로 구성하여 감각적 서사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버려진 나무 가구에 남은 기름 냄새, 낡은 옷감에서 나는 체취 섞인 향, 오래된 철제 도구에서 풍기는 산화된 냄새는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향을 통해 작품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이와 같은 감각적 장치는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관객의 심층 정서와 기억을 불러내는 감응의 장치이자, 예술적 감수성을 되살리는 촉매로 작동합니다.

 

더 나아가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는 사회적 가치와 교육적 확장 가능성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향은 심리치료, 치매 예방, 정서 순환 교육 등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예술에 접목하면 치유적 감각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의 추억이 담긴 폐자재에서 추출한 향을 통해 마을의 기억을 아카이빙하거나 폐목재, 헌옷, 버려진 식재료 등에서 자연 유래 향기를 재생산하여 향기를 중심으로 한 기억 공유 워크숍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냄새를 체험하는 차원을 넘어 후각을 통한 공동체 기억의 재구성, 나아가 세대 간 감정적 공감 형성의 예술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와 같은 접근은 향후 도시문화정책과 생태예술 프로그램의 실천적 모델로도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향은 사라지지만 남고, 보이지 않지만 강렬하며, 설명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예술이 개인의 감정과 집단의 서사를 잇는 가장 내밀하고 강력한 연결 매체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이는 폐기물 예술이 단지 재료의 순환을 넘어, 감정의 순환과 기억의 연결, 감각의 재구성이라는 예술적 실천의 전면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후각 기반 업사이클링 아트는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감각적으로, 생태적으로, 윤리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할 필요성 속에서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버려진 사물이 발산하는 냄새를 기억과 감정의 언어로 읽어내는 이 예술 형식은, 미래의 예술이 지향해야 할 감각과 생태, 정서와 공동체의 통합적 시선을 보여주는 실천적 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