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환경이 만나는 유럽의 공공미술 정책
유럽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환경 정책과 예술을 결합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공공미술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중심에는 ‘폐기물의 문화 콘텐츠화’라는 명확한 목표가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미관 개선이나 도시 미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와 환경 문제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와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을 중심으로 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각종 공공기금과 예술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환경의 접점을 실질적으로 확대해왔습니다.
2014년에 시작된 ‘Creative Europe’ 프로그램은 환경과 예술을 융합한 프로젝트를 핵심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였고,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의 지자체는 지역 공공미술 사업에서 폐자재 활용을 의무적으로 포함하거나 권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스웨덴의 스톡홀름시는 지역 쓰레기 수거 시스템과 연계된 예술 전시공간 ‘Retuna’ Art Recycling Gallery를 통해 생활 폐기물의 예술적 전환을 주도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Circular Art Lab’이라는 시민참여형 실험실 형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여 예술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폐소재를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구조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은 예술가의 자율적 창작 활동을 넘어서, 시민사회와 행정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폐기물 기반 공공미술이 단기적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예술 인프라 구축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시는 시청 주관으로 ‘Art from Waste’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예술가들이 시청 쓰레기 처리장과 협력하여 현장 기반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행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가와 행정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선진 사례로, 행정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결국 유럽의 공공미술 정책은 예술을 환경정책의 수단으로 도입한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새로운 환경 실천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선진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 설치를 넘어, 지역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체험할 수 있는 환경 감수성의 장을 창출한다는 데 핵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의 공공미술은 ‘기능’이나 ‘장식’을 넘어, 인간과 환경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문화적 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세계 각국의 도시 정책에도 깊은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폐기물로 만든 동물, 공공 공간의 생명체가 되다: 보르달로 II의 사례
유럽의 재활용 기반 공공미술 사례 중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꼽히는 예술가는 단연 포르투갈의 보르달로 II(Bordalo II)입니다. 그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버려지는 플라스틱, 고철, 타이어, 가전제품 파편 등을 모아 대형 동물 형상의 입체 조형물로 재창조하며, 환경오염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르달로 II의 작업은 단순히 폐기물 재료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탈바꿈시키는 것을 넘어, 도시 공간 안에 생태계의 흔적을 소환하고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시키려는 적극적인 예술 실천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우리는 매일같이 쓰레기를 만들고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고 강조하며, 도시인의 무관심과 소비주의를 작품 속 이미지로 고발합니다.
대표작인 <Big Trash Animals> 시리즈는 이런 메시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연작입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원형으로 삼아 제작된 이 대형 조형물들은, 모두 산업 폐기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놀라운 생동감과 감정적 울림을 전달합니다. 물범, 펭귄, 고양이, 부엉이 등 다양한 동물의 표정과 움직임은 폐자재라는 물질의 비인간성을 넘어선 정서적 공명을 유도하며, 도시 환경 속에서 단지 조형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유하게 만드는 풍경으로 작동합니다. 리스본 시내에 설치된 일부 작품은 밤에는 조명에 따라 그림자와 색감이 바뀌고, 낮에는 주변 식물과 어우러지며 살아 숨 쉬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합니다.
보르달로 II는 그 어떤 새로운 자재도 구입하지 않으며, 도시의 폐기물만을 활용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점은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윤리와 생태적 철학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며, 단지 재료의 업사이클링을 넘어서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전환까지 사유하게 만듭니다. 그의 조형물은 공공미술이 단지 미화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정서와 사회적 감각을 환기하는 생태적 거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포르투갈 리스본시는 2022년부터 도시 재생 구역에 그의 작품을 장기 설치하면서 관광과 교육, 환경 감수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도시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르달로 II의 작업은 유럽 도시 정책 안에서도 쓰레기의 전환을 통해 문화와 공공의 경계를 넓히는 중요한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제도와 현장의 접점: 독일 베를린의 ‘Kunst-Stoffe’와 업사이클링 기반 예술 행정
독일 베를린은 업사이클링 아트를 도시 차원의 제도적 실천으로 끌어올린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특히 ‘Kunst-Stoffe – Zentralstelle für wiederverwendbare Materialien(재사용 가능한 자재 중앙센터)’는 창작과 환경, 공동체를 잇는 실질적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폐기물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2006년에 설립된 이후, 예술가와 디자이너,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폐자재 플랫폼을 마련하여 자원의 흐름을 창작과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Kunst-Stoffe의 핵심 철학은 “버려지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관점에 기반을 두며, 물질적 재활용을 넘어 창의적 상상력과 사회적 실천을 아우르는 순환 창작 생태계를 지향합니다.
이 센터는 독일 연방 환경부 및 베를린 시의 환경·문화 예산 일부를 재정적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며, 베를린 내 여러 지역에 분산된 창고형 자원 센터를 통해 폐목재, 유리조각, 천 조각, 산업용 금속 부품 등 다양한 자재를 수집 및 분류하고, 사용자에게 저렴한 비용 혹은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이러한 물질적 지원은 단순한 공급을 넘어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상상을 열어주는 재료로 작용하며, 도심 내 창작 자원의 재분배를 촉진하는 생태적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센터의 사용자는 연간 수천 명에 이르며, 이들 대부분이 환경예술, 공공미술, 교육 콘텐츠 개발 등에서 이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원 순환을 예술의 언어로 전환한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Kunst-Stoffe는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ReMaterial Lab’을 운영하며, 재사용 자재를 활용한 창작 실험과 결과물의 지역 사회 환원을 동시에 실현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작업 지원을 넘어 워크숍, 전시, 공동제작 등으로 연계되며, 공공성과 창작의 접점을 확장하는 기획으로 평가받습니다. 대표 사례 중 하나인 2022년 ‘Urban Waste Sculpture’ 프로젝트는 산업 폐기물과 건축 자재를 활용한 조형 작품들을 도심 공공 공간에 배치하고, 시민들의 반응과 참여를 유도하였습니다. 일부 작품은 지역 초등학교 및 청소년 교육 기관과 협업해 교육용 교구 및 환경 감수성 향상 콘텐츠로 전환되었고, 참여 학생들이 직접 리사이클링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창작과 교육, 환경 의식이 통합된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베를린 시 정부의 도시 문화정책과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시 당국은 Kunst-Stoffe와 같은 자원 순환형 창작 거점을 문화행정의 중요한 축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 재료 공유 플랫폼 확장, 예술가 대상의 ‘순환 창작 장려금 제도’ 도입, 커뮤니티 기반 리사이클링 아틀리에 확대 등의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입니다. 또한 관련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도시 곳곳에 순환 창작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폐기물의 문화 자원화 및 시민 참여형 문화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은 단지 환경적 목표 달성에 그치지 않고, 도시 예술 정책의 실질적인 혁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술이 도시 시스템 속에서 어떤 실천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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