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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작품 사례 아카이브]

남미의 거리 예술과 쓰레기의 해방성

by 지구인_jiguin 2025. 5. 1.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거리예술의 저항 정신

남미의 거리예술은 단순한 미적 표현의 수단을 넘어서,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억압받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실천적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장르적 실험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지의 도시들에서는 제도권 예술의 범주 밖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거리 공간을 자신들의 창작 무대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도적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루는 주제는 단지 미학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도시 빈곤, 주거권 박탈, 젠트리피케이션, 이민자 차별, 인종 불평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거리예술 실천에서 주목되는 특징 중 하나는, 쓰레기 혹은 폐기물의 적극적인 예술적 전환입니다. 거리 예술가들은 버려진 플라스틱, 고철, 폐목재, 낡은 직물 등 도시의 주변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설치작품이나 조형물, 벽화와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구성합니다. 이와 같은 재료 선택은 단순히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환경적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생산해 낸 물질적 배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쓰레기는 그 자체로 사회적 낙인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낙인을 창작을 통해 전복하는 과정은 일종의 상징적 저항으로 기능합니다. 즉,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규정된 물건들이 예술을 통해 재맥락화되는 과정은,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존재와 이야기들을 복원하려는 정서적, 정치적 실천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예술행위는 도시의 외면받은 공간을 새로운 해석의 장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리예술가들은 낙후된 주택가의 벽, 방치된 창고의 외벽, 공공기관의 후면부, 고속도로 아래 등 전통적으로 예술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장소에 개입함으로써, 시선을 유도하고 담론을 발생시킵니다. 이는 예술의 장소성을 재정의하는 동시에, 도시공간 내에서 누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버려진 재료와 버려진 공간, 그리고 버려진 이야기들을 교차시킴으로써, 남미의 거리예술은 전통적 예술 제도에 대한 비판을 가시화하며, 동시에 예술이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흐름은 예술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권리를 복원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미의 거리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창작을 넘어서, 그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목소리를 함께 담아내는 집단적 창작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예술이 단지 미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과 해방성의 결합, 브라질의 예술 공동체 사례

브라질 상파울루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빌라 마다레나(Vila Madalena)’는 오랜 시간 동안 예술적 실험과 문화적 저항이 축적되어 온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주거지 중 하나였으며, 낮은 지대와 열악한 기반시설로 인해 중산층 이상의 계층으로부터 외면받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예술가들과 청년 문화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벽화와 거리예술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도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다양한 창작 공동체가 형성되며 지역 전체가 예술과 실험의 현장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Beco do Batman(배트맨 골목)’은 특히 상징적인 장소로 부상하였습니다. 이 골목은 이름 그대로 한 벽면에 그려진 배트맨 그림을 기점으로 하여 예술가들의 그래피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형성된 공간입니다. 단순히 낙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환경 문제, 인권 침해, 여성 폭력 등 현실의 민감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며, 예술가의 자율성과 정치적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공공 시각 예술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빠른 속도로 덧칠되거나 교체되기도 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담론의 실시간 캔버스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상업적 재료나 고가의 미술 도구에 의존하지 않으며, 주변 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폐자재나 쓰레기를 예술적 매체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술가들은 버려진 목재, 낡은 금속 조각, 깨진 유리, 페트병 등을 수집하고 이를 조합하여 벽화의 일부로 포함시키거나 입체적인 설치작품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는 동시에, 물질적 한계와 창작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예로 간주됩니다. 특히 일부 작업에서는 재료의 출처와 변화 과정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소비와 폐기의 시스템을 성찰하게 만들며, 관람자에게 예술의 기원과 물질의 윤리를 되묻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거리예술은 지역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사회적 의미를 획득합니다. 실제로 빌라 마다레나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거리 정화 활동과 연계된 예술 프로그램에 협력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지역 사회 내부의 의사소통 도구로 삼으며, 주민들과 함께 작업하고, 이야기하고, 표현함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재확립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공동 창작 과정은 예술을 창작자 개인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다수의 참여자와 공유되는 상호적 실천으로 전환시키며, 나아가 예술이 도시의 회복력과 연대 의식을 증진시키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거리예술 공동체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물리적 실천을 통해 문화적 저항의 상징을 구현하고 있으며, 단지 시각적 결과물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의 문화적 자율성과 창작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 그 자체를 예술의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물질의 순환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남미 도시의 거리예술은 해방과 연대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미의 거리 예술과 쓰레기의 해방성

 

환경운동을 넘어선 정치적 퍼포먼스의 전환

 

남미의 거리예술은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그 기반에는 보다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리예술가들이 쓰레기나 폐기물과 같은 비정형적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한 자원 재활용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소비사회의 그림자이자, 사회 구조 안에서 누가 무엇을 쓰고, 누가 그것을 버리며, 누가 다시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지를 묻는 계급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물질의 순환 구조 안에 내재한 불평등과 배제의 문제를 예술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비판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주 도시 외곽, 산업 폐기물 지역, 불법 건축물 해체 현장 등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배제된 장소를 창작의 무대로 삼습니다. 이러한 공간은 단지 시각적 배경이 아닌, 사회적 맥락이 응축된 장소로 간주되며, 예술은 이 공간을 통해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현실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도구가 됩니다. 예컨대, 일부 지역에서는 거리예술가들이 쓰레기 수거 노동자 또는 비공식 재활용 노동자들과 협업하여 이들의 현실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거나, 그들이 수거한 폐기물을 예술적 매체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협업은 예술이 사회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외부에 전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게다가, 정치적 억압이나 표현의 제한이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에서 거리예술은 제도적 검열을 회피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은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비인가 벽화나 설치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드러내며, 물리적 규제의 틈을 창의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불법의 경계에 놓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지역 주민의 지지를 얻거나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예술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특히, 재료 수급과 작업 과정이 고도로 자율적이고 저비용으로 수행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상업적 예술시장이나 제도권 미술관이 요구하는 자본과 규범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작업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 실천은 환경보호라는 단편적 목표를 넘어서,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정치적 참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남미의 거리예술가들은 쓰레기라는 주변화된 물질을 통해 주변화된 사람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그것을 재조명하고 새로운 맥락으로 전환시킵니다. 이는 예술이 단지 창의적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고 개입하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남미의 업사이클링 거리예술은 물질과 계급, 장소와 권력 사이의 긴장을 창작의 언어로 번역해 내며,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사회적 퍼포먼스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통한 새로운 상상력의 구축

남미의 거리예술에서 쓰레기는 단순히 버려진 물질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사회적 서사를 창출하는 창조적 매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가치하거나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이 강한 쓰레기를 예술적 재료로 삼는다는 행위는, 기존의 미적 가치 판단 체계를 전복하며, 소비사회가 배출한 이면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도발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일상 속에서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 찢어진 천, 부서진 가구, 낡은 장난감, 파편화된 유리 조각 등이 갖는 질감과 흔적에서 서사의 실마리를 포착하고, 이를 예술 언어로 재구성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재료의 가치 회복뿐 아니라, 그것에 깃든 사회적 의미와 개인적 기억까지 확장해 사유하게 만듭니다.

 

창작의 과정은 예술의 권위적 개념에 의문을 던지며, 누구나 예술의 창작자일 수 있고, 누구의 삶도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급진적 관점을 드러냅니다. 거리예술의 공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달리 특정한 입장료나 교육 수준을 요구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작품을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장소입니다. 특히 도시의 경계에 위치한 빈민가나 저소득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작업들은 예술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실천이자,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온 공동체를 창작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참여적 예술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창작 과정에 지역 주민들을 초대하거나, 주민의 삶을 반영하는 요소를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예술과 공동체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업사이클링 예술은 물질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지닌 동시에, 사회적 측면에서도 정의와 연대를 추구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수단으로 활용한 창작은 자원 순환이라는 환경적 명제를 실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 안에 인간의 존재 조건과 삶의 형태, 관계의 불균형까지도 담아내는 포괄적 서사를 구성하게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람자는 자신의 소비 행태를 돌아보게 되고, 일상의 파편 속에 깃든 의미를 성찰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결국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나 재정 자원에 의존하는 고급문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와의 접점에서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의적 틀로 재정의되는 것입니다.

 

남미 거리예술에서 쓰레기는 곧 현실을 상징하는 물질이며,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예술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윤리적 태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버려진 물건을 통해 잊힌 존재를 상기시키고, 사라져가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작업은 단순한 조형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 실천이자 문화적 회복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남미의 거리예술은 버려진 것들로부터 시작해 버려졌던 이야기와 기억, 공간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구축함으로써 예술이 가지는 치유적이고 전환적인 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