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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작품 사례 아카이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폐금속 예술

by 지구인_jiguin 2025. 5. 2.

폐금속, 문화적 서사의 재료가 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이 지역에서 폐금속을 활용한 예술은 단순한 재료 재활용을 넘어, 전쟁, 도시 붕괴, 사회적 변화의 흔적을 문화적 서사로 승화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에서는 낡은 철제 구조물, 부식된 기계 부품, 버려진 공구들을 통해 강렬한 시간의 흔적과 감정을 담아내는 예술적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튀니지 출신 아티스트 라틱 벤 지디아(Latif Ben Gedia)는 버려진 자동차 부품과 산업 폐자재를 재조합해, 도시의 상흔과 재건의 메시지를 담은 조형물을 제작해 왔습니다. 이처럼 폐금속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희망을 담는 살아 있는 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아랍어로 ‘자크르(Zikr, 기억)’라는 개념처럼, 폐금속 예술은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는 감성적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폐금속 활용은 자원의 부족이라는 실용적 이유를 넘어, 서구적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은 종종 외부로부터 강요된 발전 모델에 대한 저항을 내포하고 있는데, 버려진 금속이라는 문명의 부산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그 자체로 세계화 속에서 주변화된 지역성과 정체성을 다시 발화시키는 행위로 읽힐 수 있습니다. 폐금속은 기능을 잃었지만, 그 안에 응축된 노동과 시간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예술가는 이를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서사를 구축합니다.

 

이 지역의 폐금속 예술은 대중성과 접근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고가의 재료나 첨단 기술 없이도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폐자재를 기반으로 작업을 펼침으로써, 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공동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실천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예술가들은 거리 벽화, 광장 설치물 등 보다 생활 밀착형 창작을 통해 폐금속의 거칠고 강인한 물성을 공동체의 기억과 현실에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점차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업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튀니지의 ‘Dream City’ 프로젝트, 도시 폐허 속 예술의 싹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Tunis)에서 시작된 Dream City’ 프로젝트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폐금속 예술이 어떤 문화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례로 손꼽힙니다. 이 프로젝트는 2007년을 시작으로 매 2년마다 개최되는 다학제적 예술 축제로, 특히 아랍의 봄 이후 남겨진 사회적 상처와 도시의 파편을 예술로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행사가 아니라, 버려진 골목길, 낡은 광장, 붕괴된 건물 내부까지도 전시장의 일부로 삼아, 시민들과 함께 도시를 다시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살아 있는 예술 실험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Dream City'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폐금속과 산업 폐기물을 주요 재료로 삼아 제작한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17년 행사에서는 폐철로 제작된 인간 형상의 조각들이 튀니스 구시가지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작품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불안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버려진 선박의 잔해, 오래된 자동차 부품, 녹슬어가는 가로등 기둥 등 일상 속에서 방치된 물질들을 수집해 조형물로 탈바꿈시켰고, 그 위에는 과거 시위대가 외쳤던 구호나 시민들의 개인적 증언을 새겨 넣음으로써, 단순한 물질적 재료를 넘어 시대의 기억과 집단 감정을 품은 감성적 매개체로 승화시켰습니다.

 

‘Dream City’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참여형 예술을 지향한다는 데 있습니다. 시민들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전시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적극적인 공동 창작자로 자리합니다. 폐허가 된 공터에서는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금속 조각을 용접해 거대한 공동 작품을 제작하는 워크숍이 열렸고, 도시의 한복판에서는 폐금속 조각을 설치한 후,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도록 초대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Dream City’는 예술이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가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민주적 문화 실천임을 실질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과정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도시 재생이라는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축제가 종료된 이후에도 여러 폐금속 조각 작품들은 튀니스 메디나(구시가지) 지역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낡은 금속 조각과 생생한 기억이 얽혀 만들어진 이 예술적 풍경은 도시의 감성을 깊게 적시며,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동을 남깁니다. 도시 곳곳에 남겨진 이 창작물들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감정적 울림을 선사하며, 한때 잊혔던 공간을 새로운 문화적 생명력으로 되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Dream City’ 프로젝트는 폐금속이라는 버려진 재료를 통해 기억, 저항, 치유의 서사를 새롭게 직조하는 한편, 예술과 도시, 공동체가 어떻게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지를 실천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예술 축제를 넘어, 사회적 트라우마를 품은 도시의 집단 기억을 섬세하게 복원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혁신적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Dream City'는 상처 입은 도시를 감싸 안고, 예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공동체의 꿈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폐금속 예술

 

모로코의 금속 장인과 현대 예술가의 협업

모로코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중에서도 가장 깊은 금속 공예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하나입니다. 페즈(Fes), 마라케시(Marrakech), 메크네스(Meknès) 같은 도시는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금속 세공 기술로 유명합니다. 특히 구리, 황동, 철을 이용한 정교한 문양 새김과 조각 기술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오래된 장인 기술은 현대 업사이클링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젊은 현대 예술가들은 버려진 금속문, 낡은 창살, 폐공장 설비 등을 수집해 전통 장인들과 함께 새롭게 재구성된 조형물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모로코 문양 예를 들어, 아라베스크 패턴이나 기하학적 별무늬를 폐금속 표면에 섬세하게 새기거나, 부식된 재료 위에 현대적 기호와 상징을 덧입히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 기능성과 예술성, 손기술과 창의성이 하나로 엮인 복합적인 문화 결과물로, 지역사회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마라케시의 예술 공간인 'Al Maqam Artist Residency'에서는 여러 차례 이러한 협업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폐자재를 기반으로 한 조각품 제작 워크숍이 열리고, 결과물은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나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지역민들과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물질적 재활용을 넘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문화 보존에도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몇몇 프로젝트는 유네스코가 추진하는 'Sustainable Cultural Tourism' 캠페인과 연계되어, 문화유산 보존과 현대 예술 창작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폐금속을 활용한 현대 예술 작품은 모로코 내외 관광객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는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예술 실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모로코에서의 폐금속 예술은 단순히 재료 재사용이나 장인 기술 보존을 넘어서 현대 예술 창작의 장이자 공동체 문화 재생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흔적을 품은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생동하는 기억의 조각들입니다.

 

 

폐금속 예술이 제시하는 미래, 기억을 잇는 창조적 재생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폐금속 예술은 단순히 환경적 필요나 미적 실험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들은 상처 입은 역사와 기억, 현재의 공동체,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잇는 창조적 재생의 문화적 실천입니다. 특히 튀니지의 'Dream City'나 모로코의 폐금속 장인 협업처럼, 폐기물과 상처의 흔적을 존중하고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치유와 문화적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폐금속은 본래 기능을 잃은 재료입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이들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서사가 됩니다. 한때 버려진 문짝, 낡은 철제 프레임, 부식된 선박 조각은, 도시의 상흔과 인간사의 깊은 정서를 품은 기억의 조각으로 변모합니다. 이를 통해 폐금속 예술은 단지 미학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기억, 생태적 재생, 공동체적 정체성 구축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동시에 담아내는 복합적 문화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흐름은 단지 지역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지속 가능한 예술 운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 위기, 자원 고갈, 지역 소멸 같은 글로벌 이슈 속에서 폐금속 예술은 인간과 자연, 과거와 미래, 기억과 창조 사이의 긴밀한 연결 고리를 다시 발견하고 강조하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폐금속 예술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단순히 재료를 바꿔 쓰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예술로 복원하고, 지속 가능한 문화를 창조하는 실천적 모델로서, 전 세계 예술계에 깊은 영감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버려진 것 안에 무엇이 살아 있는가?" "상처 난 자리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심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